• 최종편집 2024-05-15(수)
 

w45g.jpg

 

살앙하다 하다


김영란


누구라도 알고

나만 모르는 내 나이가 물속으로 깊어졌는지

눈이 침침해지고

발이 느려진다


동사무소에서 묵은 편지를 받는 날이면

종이에서 사라진 온기로

안다

나는 늙어지고

세상은 언제나 젊다는 배반


낡은 편지를 읽고 싶다

첫 줄에 쓰인 '살앙'이

살 속에 박힌 가시로 돋아서


바느질 반짇고리에 넣어

쓸쓸한 나이마다

촘촘히 기워내서

땀이 고르던 시절을 기어오르고

싶다

그러하다



*살앙: 사랑의 유음입니다. ^^


◈시작노트◈


우리 모두는 매 순간 세포가 증식하고 다시 그 세포는 스러져가는 유기체입니다

그것을 순환이라 하지요

시를 쓰면서 시를 만나는 일이 매 순간 두렵고 떨리다가

또다시 즐겁고 설레는 연인이 되는 이율배반

연심戀心은 잊어버렸는데 사랑이라는 단어가 가진 아름다운 여운은

언제나 가슴을 두드립니다

그 이유로 어린날 유음으로 하던 '살앙'을 떠올렸습니다

사랑이 지닌 어떤 모서리라도 잊어버리게 만들어 묵은 편지로 그립게 다가오는,

낡아 편안한 사람의 살앙, 그 이율의 정반합으로 늙어가고 싶습니다.


♣김영란 시인 약력♣

1963년 부산 출생

1984년 '시문학' 등단

시사모 동인시집 '돌을 키우다'

시집 '후박나무 연애도감'

현재 제주도 오등동 거주

태그
비밀번호 :
메일보내기닫기
기사제목
살앙하다 하다 / 김영란
보내는 분 이메일
받는 분 이메일