살앙하다 하다 / 김영란
시사모가 선정한 금주의 시
살앙하다 하다
김영란
누구라도 알고
나만 모르는 내 나이가 물속으로 깊어졌는지
눈이 침침해지고
발이 느려진다
동사무소에서 묵은 편지를 받는 날이면
종이에서 사라진 온기로
안다
나는 늙어지고
세상은 언제나 젊다는 배반
낡은 편지를 읽고 싶다
첫 줄에 쓰인 '살앙'이
살 속에 박힌 가시로 돋아서
바느질 반짇고리에 넣어
쓸쓸한 나이마다
촘촘히 기워내서
땀이 고르던 시절을 기어오르고
싶다
그러하다
*살앙: 사랑의 유음입니다. ^^
◈시작노트◈
우리 모두는 매 순간 세포가 증식하고 다시 그 세포는 스러져가는 유기체입니다
그것을 순환이라 하지요
시를 쓰면서 시를 만나는 일이 매 순간 두렵고 떨리다가
또다시 즐겁고 설레는 연인이 되는 이율배반
연심戀心은 잊어버렸는데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아름다운 여운은
언제나 가슴을 두드립니다
그 이유로 어린날 유음으로 하던 '살앙'을 떠올렸습니다
사랑이 지닌 어떤 모서리라도 잊어버리게 만들어 묵은 편지로 그립게 다가오는,
낡아 편안한 사람의 살앙, 그 이율의 정반합으로 늙어가고 싶습니다.
♣김영란 시인 약력♣
1963년 부산 출생
1984년 '시문학' 등단
시사모 동인시집 '돌을 키우다'
시집 '후박나무 연애도감'
현재 제주도 오등동 거주